ON-AIR

조선 '왕지' 기증, 가보가 시민의 품으로

이승준 | 2018.12.10 | 좋아요1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
◀ANC▶
충주 석씨 문중이 600여 년 동안
집안 가보로 내려오던 고문서를
충주시에 기증했습니다.

조선 시대 관직에 임명한다고
왕이 내린 일종의 문서인데,
요즘 보기 드문 자료입니다.

이승준 기자…
◀END▶

누런 종이에 흘려 쓴 한자와
희미하게 형태만 보이는 붉은 낙인.

첫머리에 '석여명'이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조선 태종이 석여명을 종2품에 해당하는
집현전 '제학'에 임명한다는 글입니다.

임금의 명령이나 관직을 내리는 문서는
보통 '교지'로 알려졌지만,
고려와 조선 초기에는 '왕지'로 불렸습니다.

세종 때 교지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기에
현재 전해지고 있는 '왕지'는 그만큼 드뭅니다.

◀INT▶ 유봉희 충주시 학예연구팀장
"소장 자료는 '교지'는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는데, 이 '왕지'는 첫 사례가 됩니다. 소장자료로써. 일단 잘 보존 처리해야 하고..."

조선 태종이 직접 글씨를 쓴 왕지만큼
사연도 특별합니다.

고려말 공민왕 때 급제한 석여명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태종의 관직을 사양해 충주까지 쫓겨 내려왔고
학문에 전념하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살아서는 사면받지 못했으나
의리를 지킨 뜻을 기려
죽은 뒤 '좌찬성'이라는 관직이 주어졌습니다.

◀INT▶ 석준호 / 충주석씨대종회장
"많은 분들이 공유하면서
우리 조상의 훌륭한 정신을 받들고,
그다음에 충주박물관에서 영원토록
잘 보관해 주리라 믿고..."

600여 년의 세월을 견딘 왕지는 훼손이 심각해
당장 일반에 공개하기는 어려운 상황.

충주시는 왕지에 대해 보존 처리를 거친 뒤,
석 씨 문중에서 기증할
다른 유물과 함께 전시할 방침입니다.

또 보물이나 국보에 이름을 올리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가,
지역의 소중한 유물로
600년 만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MBC 뉴스 이승준입니다.
(영상취재 천교화, CG 강인경)

좋아요그레이
twitter스크랩 me2day스크랩 facebook스크랩